인류는 농사를 1만 년 전부터 짓기 시작했지만, 그 전 300만년 동안은 수렵과 채집 그리고 어로로 살아왔다. 따라서 인류는 급격한 사회변화에 맞춰 습성을 진화시킬만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의 행동방식을 분석함에 있어서 현대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수렵인(사냥꾼)과 채집인의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
수렵과 채집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남성은 수렵에, 여성은 채집에 종사했다. 수렵은 실패의 리스크가 크지만 성공하게 된다면 큰 자원을 얻을 수 있고, 채집은 안정적이지만 작은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의 ‘생애 칼로리 소비 및 생산량’을 보면, 남성은 육체적으로 최전성기에 이르는 시점(나이)에 칼로리 소비량의 두 배를 생산하지만, 여성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큰 변화가 없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남녀의 차이는 여기서 발생하게 된다. 문제의 핵심은 산출량의 차이 때문에 분배방식에도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경제활동은 출산과 육아를 병행하기 때문에 잉여생산물을 낳기가 어렵다. 따라서 여성의 생산물들은 주로 가족과 친족들이 소비하는 것에 국한되며, 다른 가족들이 채집해 온 물건을 필요로 할 경우, 1:1의 물물교환의 과정을 거치는 반면, 남성은 육체적 최전성기의 칼로리 생산량이 자신이 소모하는 양의 두 배를 상회하며, 이것은 가족이나 친족이 수용 가능한 칼로리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남성들은 남는 사냥감을 대부분 공동체 전체에 공평하게 분배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아직도 수렵과 채집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부족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즉 여성들은 남성과 달리 생산 활동과 육아를 병행하기 때문에 애초에 산출량의 크기가 작고, 이 한정된 자원을 자신과 가까운 순으로 분배 해왔다는 것이다. 여초사회가 보여주는 고유의 특성들은 이러한 채집인의 특성과 아직까지도 연결되어 있다.
흔히 여성보다 남성이 의리가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의리라는 것은 실리적 판단을 배제한 채, 자신과 친밀한 정도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집단을 이룸에 있어서 의리 있는 것은 여성들이다. 여성이 만들어내는 집단은 어떻게 보면 부분적으로 ‘임협집단’(개인적 친소관계를 중심으로 결합된 집단)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것은 집단을 이루는 기본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성들이 집단을 이루는 것은 이익의 최대 산출량을 증대시키기 위해서이다. 수렵(사냥)은 기본적으로 정보교환과 축적된 노하우를 필요로 하며 이를 위해서 자신과 이권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다른 사람들과도 연합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개인적인 이익 또는 공동체의 이익이든 간에 남성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이익창출에 대한 공동적인 합의가 존재하며, 이에 따라 ‘이합집산’(헤어졌다가 모였다가 하는 일) 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용인이 가능한 편이다.
그러나 여성은 다르다. 여성의 칼로리 생산량은 개인 스스로가 필요로 하는 양 정도만을 유지하고 있다. 여성의 생산물들은 대부분 가족들과 친족들에게 분배되는 선에서 그친다. 그러므로 여성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남성처럼 공동의 목표를 위한 이합집산 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치 친 가족과도 같은 운명공동체 형태로 발생하며 발전하게 된다. 그러니 이합집산은 그 어떠한 이유로도 절대 용납되지 않으며 이는 심각한 배신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이권이 아니라 상위 서열자가 생산하는 내부적이고, 암묵적인 특유의 규율에 따라서 움직이며 이 규율에 어긋난 경우, 조직에서 배제 당하게 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공감’은 이 울타리 안에서만 통용되는 화폐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여성들의 공감은 보편성을 가지지 않으며, 여성이 인식하고 인정하는 내부 관계자에 한해서만 발휘되고, 외부인들 에게는 주어지기가 매우 힘들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는 주로 중국 고대 문학에서 표현하고 있는 임협집단의 성격과 거의 동일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중국 고대 문학에서 임협집단들은 주로 남성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철저히 이권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임협집단이란 개인적인 이해보다는 자신들이 대의라고 믿는 명분의 실천을 위하여 개인적 친소관계를 중심으로 결합된 집단이다.
여성으로 이루어진 집단처럼 최대산출량이 고정되어 있는 사회의 경우, 장기적인 내부 투쟁은 곧 공멸로 향하게 되므로 여성 집단 전체가 유일하게 공유하게 되는 교리는 ‘평화’인 것이다. 만약 평화를 깨트리는 사람이 존재할 경우 아마도 그 사람은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 그 사안이 옳거나 혹은 그렇지 않거나 여성들은 절대 내부적 충돌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문제는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갈등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발생하는 충돌은 여성 집단에서는 절대 표면적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매우 정치적인 방법으로 상대방에게 보복이 가해지게 된다.
이것은 갈등상황이 발생하면 일단 달려들어 결론을 내는 남성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이며, 대부분의 경우 남성들은 여성들의 이 정치적인 행동의 맥락을 짚지 못한다. 예를 들어 여성 집단에서 갈등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중재하려하는 남성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남성의 행동은 내부적 갈등을 빨리 마무리하고 또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려는, 즉 사냥을 나가려 하는 수렵인의 특성에서 기인하는데, 문제는 외부자인 남성이 볼 수 있을 정도의 충돌이 일어난 상황이라면, 이미 저 여성 집단 내에서는 정리가 끝난 사안이라는 것이다.
한번 여성 집단의 내부조직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의 경우 보통 다시는 저 집단 내부로 들어갈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이 사람이 부재한 상태만이 집단 내부의 평화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중재자 인 남성은 다시 친하게 지내는 것이 평화 상태로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중재 시도는 여성 집단의 내부자들에게 오히려 분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인식되며 남성은 내부 규율을 깨트리려하는 ‘룰 브레이커’가 되기 때문에 중재하는 남성 쪽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제는 이 표면적인 ‘평화의 룰’이 대부분의 여성 집단이 자정작용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주 요인 중의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투쟁은 에너지를 소모 하지만 그만큼 발전과 균형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 집단은 애초에 갈등상황 자체를 만들려 하지 않기 때문에 반대의견이 나오기 어렵고, 이는 조직의 방향을 잃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여성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의 일’과 ‘공동체의 일’을 철저히 구분 짓는다는 것이다. 여성은 어떤 조직에든 필요하지만, 자신의 일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 일에는 절대 나서지 않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여성들은 저 일(조직에 필요하지만, 자신의 일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 일)을 함으로써 오는 노동력의 소모를 손해로 간주하고 이것의 득과 실을 따져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될 경우 굉장한 불만을 표출한다. 이것은 무엇이 어찌됐든 어차피 해야 되는 일이라면 그냥 해버리는 남성들과는 완전히 다른 성향이다.
그러나 이것을 현대인이 아니라 수렵인(사냥꾼)과 채집인의 시각으로 보면, 이러한 행동은 당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 여성이 개인적으로 채집한 수확물들은 잉여 생산량이 없으므로 자신의 노동력 소모가 곧 가족의 칼로리 섭취로 직결된다. 개인주의적인 행동이 개인과 가족에게는 이득인 것이다. 이렇게 채집인의 시점에서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반면에 남성들은 공동체에 협력하는 것이 개인으로도 이득이 된다. 거대한 동물을 사냥하는 것은 다수의 협력을 필요로 하며, 이 사냥이 숙달되려면 선임 사냥꾼들의 도움이 오랜 기간 동안 필요하기 때문에 남성들은 이러한 사냥 공동체라는 곳에 최대한 협력해야 개인의 생산량 또한 함께 증대시킬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냥꾼들에게는 이러한 협력이 주가 되어야 할 만한 또 다른 요소가 있는데, 바로 사냥꾼들의 사회적 지위는 칼로리의 절대량이 아니라 사냥감이 얼마나 크고 진귀한가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토끼 100마리는 호랑이 한 마리 보다 칼로리 상으로는 더 이득이지만, 사냥꾼의 사회적 위치를 결정하는 데에는 후자가 압도적으로 기여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수렵과 채집 사회의 두 가지 의제인 생존과 번식 중 번식에 있어서 많은 추가 점수가 부여된다. 이는 여성들이 남편감으로 보다 거대한 사냥감을 잡아온 남성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성들은 개인적으로 작은 사냥감들을 많이 잡는데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주변 인물들과 협력하여 거대한 동물들을 사냥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이 남성들이 왜 일반적으로 조직에 훨씬 더 많이 기여 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은 이러한 요인을 갖기 어려우므로 여성은 공동의 노동에 비협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보교환과 협력이 기본 베이스가 되는 사냥꾼들로서는 당연한 일상을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이 조금은 당황스러운 인식에 대해서 불만을 나타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 집단(여초사회)에서 살아가는 남성들에게 있어서는 이에 적응하려하기보다는 이를 여성들(채집인들)만의 행동원리인 것을 깨닫고 약간 거리를 두는 것이 훨씬 더 적합한 처신이 될 것이다. 남성들(수렵인들)은 여성들(채집인들)을 이해하기가 어렵고, 그 미묘한 맥락을 짚어낼 능력도 없으며, 만약 그렇게 한들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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