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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opinion

미리 막을 수 있었던 강수연의 심정지....

by 1972 trist 2022. 5. 6.

 

영화 ‘베테랑’에서 황정민의 명대사가 하나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이 유명한 대사는 류승완 감독이 강수연을 떠올리며 만든 대사라고 한다. 류승완 감독의 무명시절, 강수연은 배고픈 단역배우나 스태프들을 위해 항상 촬영이 끝나면 본인의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사 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우리 영화인이 돈이 없지 가호가 없냐며 후배들을 격려했다고 한다. 

 

Korean actress Kang Soo-yeon
영화배우 강수연

 

그 시절 류승완 감독은 강수연의 이 말에 감명을 받아 자신의 최고 흥행작인 베테랑에서 강수연을 떠올리며 ‘오마주’(hommage) 한 것인데 이런 그녀가 오늘 뇌 출혈로 심 정지 끝에 의식불명이라는 안타까운 비보를 전했다. 

 

*오마주(hommage)- 일반적으로 타 작품의 핵심 요소나 표현 방식을 흉내내거나 인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존경'이라는 의미답게 모방을 통해 원작에 대한 존경심의 표출 그 자체가 목적이다. 단순 풍자나 개그 효과를 노리는 패러디와는 달리 딱히 개그 장면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주로 영화 등 대중문화에서 사용되지만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등 학계에서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대작의 제목이나 문장 배열을 살짝 비틂으로써 해당 저서와 학자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강수연은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같은 국내 영화제 및 베니스 국제 영화제 같은 세계적인 영화제를 포함하여 여우주연상 10관왕을 수상한 여배우이자 여러 방면에서 최초와 최고라는 타이틀을 그 누구보다 많이 보유한 배우였다. 강수연은 1966년 출생으로 서 4살 때부터 배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녀가 배우를 시작하게 된 일화가 있는데 어느 날 한 남자가 놀이터에서 4세의 어린 강수연을 보게 되었는데 직감적으로 이 꼬마가 배우가 될 운명임을 느끼고 바로 그 자리에서 강수연의 부모를 찾아가 배우로 키울 수 있게 맡겨달라며 부탁해 결국은 허락을 받아내 그렇게 강수연은 말도 제대로 못했던 4살의 나이에 공영방송의 아역 배우로 본격적인 배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나이에도 빠른 시간 안에 큰 인기를 얻었던 그녀는 데뷔 이후 고등학교 때까지 딱 하루만 쉰 것을 제외하고는 정말 치열한 인생을 살아 왔는데 이것은 훗날 강수연이 토로했던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연기를 제외하고 그녀가 10대 시절 가진 유일한 추억은 엄청난 인파에 치어 명동 거리를 구경한 것뿐이라고 한다. 더욱이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3명의 형제와 부모님을 그녀가 가장으로서 먹여 살려야 했기에 당시 임권택 감독은 그녀가 대견하지만 한편으론 정말 불쌍하다고 말했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그렇게 가족을 위해 필사적으로 연기한 그녀는 마침내 18살에 ‘고교생 일기’란 드라마로 큰 인기를 얻으며 손창민과 더불어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나아가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에서 관객 수 1위를 기록하며 성인 배우로서도 자신의 입지를 충무로에서 확실히 굳혔다. 또한 아역배우 때부터 탄탄하게 쌓은 연기 실력과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를 촬영하면서 삭발투혼까지 감행하던 연기에 대한 열정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으며 국내 최초로 월드스타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 

 

그렇게 4살 때부터 29살까지 탄탄대로만 걸어오던 그녀는 ‘장미의 나날’이라는 영화에서 흥행참패와 혹평을 받으며 87년 이후 처음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서 제외되었는데 당시 언론들은 그녀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고 보도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가 대단한 것은 포기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90년대 추억의 배우로 끝날 수 있던 슬럼프와 위기를 이겨내고 2000년 무렵에 영화 ‘송어’로 다시 한 번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고 마침내 2001년, 세상에 보란 듯이 드라마 ‘여인천하’를 성공시키고 말았다. 

 

 

 

여인천하는 아직까지도 역대급 드라마로 회고될 만큼 최고시청률 35%를 기록했던 엄청난 대작이었는데 그녀는 여배우 최초로 회당 출연료 500만원 시대를 열며 강수연이라는 이름 석자를 다시 화제의 인물로 올려놓았다. 사실 이런 최초의 기록은 비단 드라마 출연료 말고도 일찍이 영화판에서 여배우 최초로 억대 개런티를 받았으며 광고비 또한 최초로 4억을 받았던 배우다. 1992년에 억대의 개런티와 4억의 광고비를 받았다고 하니 이는 당시 물가를 감안해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여튼, 어린 시절부터 배우의 인생을 살던 그녀는 잠시 주춤하던 슬럼프 시절을 악용해 스폰서 제안을 하던 남자를 상대로 불같은 싸대기를 때리며 호통을 쳤을 정도로 자존심을 지켰기에 많은 여배우들은 그녀를 항상 존경해 왔는데 연기파 배우 ‘이성민’ 또한 자신의 롤 모델이자 우상은 강수연이라고 늘 언급해왔다. 그가 어느 방송에서 매우 부끄러워하며 고백하기를 군복무시절 항상 그녀의 사진을 철모 속에 갖고 다닐 정도로 오랫동안 그녀를 흡모하고 존경했다고 토로했다. 

 

이성민
배우 이성민

 

그런데 강수연이 심 정지가 오기 전에 이미 이상증세를 알아차리고 119에 전화하며 증세를 호소했지만, 다소 미흡했던 조치로 오늘 같은 참사가 결국 벌어졌다는 것이다. 미리 병원에서만 대기하고 있었어도 이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충무로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배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인 강수연, 그녀의 오늘 예정된 수술이 무사히 마무리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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