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의 원자력 발전에 대한 발언에 변화가 있었다. “탈 원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라는 과거의 발언에서 “향후 60년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로 말을 바꿨다. 이렇게 임기 초와 임기 말의 언급에 온도차이가 느껴지는데 해석상의 차이와 논란들은 있지만 어쨌든 탈 원전 정책에 변화가 생겼다는 기대감에 두산 중공업이나 한전 같은 원전 관련주들이 크게 올랐다.
실제로 원전 가동률을 보면 과거에는 50%대까지 떨어진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90% 가까이 반등했다. 이렇게 갑자기 분위기가 변한 이유는 석유, 석탄, 가스 등 에너지가 모두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초기에 세계적인 봉쇄로 경제 활동이 줄고, 그만큼 에너지소비 또한 줄었다. 그래서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줄였는데 위드코로나로 다시 수요가 증가하면서 공급이 따라가질 못해 유가가 오른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러시아에 각종 경제 제재들이 가해지고 있는데 러시아산 에너지를 수입하는 것을 금지해 각국의 정유 업체들이 러시아산 에너지구입을 꺼리거나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보니 그만큼 유통이 되는 물량이 줄고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발전 단가가 상승하다 보니 한국 전력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전기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으니 그 비용이 사회에 전가되고 있으니 그만큼 물가도 오르고 있다. 지금 다들 인플레이션 잡겠다고 금리 올리고 별짓을 다하고 있는 상황인데 특히 코로나, 신 냉전, 무력분쟁이 장기화되어 에너지 부족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보니 상대적으로 저렴한 에너지인 원자력으로 다시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원자력이 가지는 경제성이라는 강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이때, 특히 유럽은 러시아에서 오는 가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보니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대체재가 필요한 상황인데, 재생에너지의 길을 걷기에는 이 길이 바람직한 길이긴 해도 아직까지 가성비가 잘 않나와 갈 길이 너무 멀다. 그러면서 가성비도 나오면서 기후변화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은 원자력 발전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사실 원자력 발전도 사고 위험에 폐기물 문제가 있지만 적어도 탄소 배출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서 이제 다시 원자력 발전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문제는 그 동안 유럽이 탈 원전을 선도 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말을 바꿔야 하니 명분이 필요했는데 이번에 유럽연합(EU)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 ‘특정 조건을 만족 하면 원자력 발전에 대한 투자도 친환경 투자로 인정한다’며 원자력 발전의 친환경성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아직 확정된 내용도 아니고 반대하는 국가도 있긴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가 있어서 찬성 국이 더 많다. 그래서 아마도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에서 탈 원전 정책을 주도했던 프랑스도 이제는 원전 복귀 현상을 주도하는 느낌이 들 정도니 말이다. 미국도 다시 원전을 지원하겠다고 나오고 있으니 이제 세계적인 흐름이 원전 퇴출에서 원전 복귀로 다시 바뀐 것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에 필요한 에너지의 총량은 그동안 계속해서 늘어나기만 했다. 세계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에너지를 쓸 곳이 더 많아지다 보니 생산해야 하는 양은 증가하는데 생산수단인 원자력은 줄이고 있고, 재생 에너지는 기대에 못 미치다 보니 결국은 석탄이나 가스 사용량을 줄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탄소배출을 줄이기도 힘들다. 특히 한국은 자원을 모두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데 지금 자원을 구하기도 힘들고 비싸다 보니 에너지 안보나 경제에도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자원 문제에서 조금 더 자유로운 원자력으로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과거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사태가 원전에 대한 공포를 키운 것은 사실이다. 이때 원전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들이 나온 것은 바람직했는데 문제는 그 이상으로 위험성을 과장하는 여론이 커졌으며 또 반대쪽에서는 원전이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며 맹목적으로 편을 드는 세력도 생겨났다. 하지만 이러한 공포나 맹신이 아닌, 사실에 집중을 하고 이익이나 가치관이 아닌, 이해에 집중을 해야만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 가능해진다.
현실적으로 재생 에너지가 완숙해질 때까지 고물가를 방어하고 탄소 배출도 줄이면서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것은 원자력뿐이라는 공감대가 요즘 들어 강해지고 있다. 환경 문제에도 우선순위가 있는데 제일 급한 것이 기후 변화의 요인인 탄소 배출을 막는 것이다. 이것이 워낙 시급한 문제다 보니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보다는 탄소 배출을 막는 것이 더 먼저라는 것이며 최소한 기후변화에 한해서는 원자력이 더 친환경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원자력 발전이 진짜로 친환경에너지인가?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전도 사고가 터지면 주변 환경이 오염되고 폐기물 처리 문제도 심각하다. 원전 폐기물 역시 정말 오랫동안 방사선을 방출하는데 이 방사선이 방출되는 주기가 빠른 것은 1초도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긴 것은 수만 년은 기본이다. 아마도 인류가 멸종한 뒤에도 남아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이렇게 후세에 책임을 전하하는 구조를 가진 원자력 발전을 친환경 에너지라고 하는 것은 사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다.
물론 안정성이 점점 강화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인류의 마지막 원전 사고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100% 안전한 기술이라는 것은 없으니 말이다. 사고의 리스크나 비용보다 효용이 크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당장 원전을 사용해야 되는 것도 맞고, 위험한 것도 맞으면, ‘기술력으로 위험성을 줄이면서 사용하자’는 것이 정론이다.
결국에는 원전도 사고율을 줄이고 사고가 나도 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게 시스템과 기술을 혁신할 필요가 있는데 그래서 최근에 주목을 받는 것 중의 하나가 ‘소형모듈원전’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도 나름 선도하고 있는 분야며 수출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기술이다. 모듈 방식이라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 수가 있고 덕분에 원전 건설 기간이 단축되고, 단점이었던 건설비용까지 해결이 되는 시스템이다.
후쿠시마 사태의 경우는 쓰나미로 원전이 침수 되면서 예비 발전기가 먹통이 되고 전력 공급이 안 되니까 냉각 시스템이 돌다가 멈추면서 사고가 커진 것이다. 그런데 이 소형모듈원전은 자연 순환 냉각 방식이라는 것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기가 끊겨도 문제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 업계가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사실 폐기물 처리가 가장 큰 문제다. 여기서 핵심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잘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냥 우주로 날려 버리면 깔끔할 것 같은데 비용 문제도 있고 만약 사고가 나면 사실상 생화학 무기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힘들다. 과거에는 바다에 수장했다가 오염되는 문제가 있어서 지금은 안 하고 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지하 깊숙이 땅을 파서 묻어버리고 봉쇄하는 것인데 그것도 부지 선정이 쉽지 않다. 그래서 당장은 원전 옆에 쌓아두고 있는 실정인데, 좀 더 진보된 기술로는 이미 사용한 연료를 다시 원자로에 넣고 재사용하는 재활용 기술이나 아예 다른 물질로 바꿔버리는 기술도 연구되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와 신 냉전으로 에너지가 비싸지면서 재생에너지로 가는 길이 조금 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재생에너지가 주력이 되 야만 하고, 이 새로운 에너지를 미리미리 준비하는데 실패한다면 또 지난 수십 년의 과거를 되풀이하는 실수를 하게 될 것은 뻔하다. 이렇게 되면 에너지 자립을 못해서 계속 수입에 의존할 테고, 문제가 생기면 경제와 안보가 들썩이며, 이미 골든타임 위에 있는 기후 변화의 위기를 생각하더라도 재생에너지로 넘어가는 흐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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