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맥케이(Adam McKay)는 매우 흥미로운 영화감독이다. 그의 최고작을 필자는 ‘빅쇼트’(Big Short)라 생각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은 사실 ‘돈 룩 업’(Don’t Look Up)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솔직히 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돈 룩 업에 나오는 배우들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하고 생각해본다.
혜성 충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영화나 이야기로 만든 경우는 적지 않다. ‘딥 임팩트’(Deep Impact)나 ‘아마겟돈’(Armageddon)이 모두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운석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돈 룩 업처럼 이를 코미디로 풀어낸 경우도 있다. ‘너의 이름은’ 역시 혜성에서 빠져나온 운석 충돌의 이야기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 돈 룩 업은 그 어떤 작품과도 차별되는 진정한 의미의 재난(인재)영화처럼 보인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대책도 없고 무언가 허술하지만 그래도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한, 그런 작품 말이다. 작년 12월 24일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돈 룩 업, 영화의 시작부터 눈이 즐거워진다. 왜냐하면 여성 배우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던 ‘제니퍼 로렌스 그리고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조합은 정말 흔치않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은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사제지간인데 민디 교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박사과정 학생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가 혜성을 발견했고, 민디 교수가 이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혜성이 지구로 날아와 충돌한다는 것, 민디 교수와 디비아스키는 즉시 이 사실을 알렸고, 결국 백악관으로 긴급 이송된다. 인류의 중대사가 걸린 일이니 당연히 벌어지는 상황일 것이다.
민디 교수와 디비아스키는 이 엄청난 상황에 두려움에 떨면서 군용 비행기에 오른다. 문제는 백악관의 상황이다. 민디 교수와 디비아스키는 조금 있으면 지구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대통령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에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는데, 백악관의 분위기는 이상하다 못해 우스꽝스럽게 돌아간다. 극도로 심각한 두 사람 앞에서 일단 제이니 올린 대통령은 다른 해야 할 일이 많아 보인다. 이번에 새로 임명한 대법관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올린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관이 지금 제대로 된 법학학위도 없고, 젊은 시절에 포르노에 출연했다는 폭탄이 터진 상태라 이로 인해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올린 대통령은 너무나 태평하게 보인다. 결국 여기서 아담 맥케이가 말하려 하는 것은 이런 식의 진지하지 못한 태도를 말하려함이 아닐까?
여기서 올린 대통령은 자신의 아들을 비서실장으로 두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 또한 과거 트럼프 정부에 대한 풍자인 듯 보여 진다. 여튼, 대통령은 이 문제를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당장 지구가 멸망하게 생겼는데도 그 문제를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 아담 맥케이는 이러한 태도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어떤 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선 그것을 믿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게 벌어지는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행 앞에서는 그것이 틀렸기를 바라는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올린 대통령의 태도는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걸맞지 않게 매우 가벼운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아니, 민디 교수와 그 일행을 제외하고는 그곳의 정치인과 군 관계자들은 모두 이상하고 알 수 없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중 삼성 장군이 원래는 무료로 음용할 수 있는 과자와 물을 민디 교수의 일행에게 10달러씩 받고 파는 행동을 하는데 이 행동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민디 교수와 디비아스키는 결국 TV 방송까지 나가게 되는데 이 방송에서 두 진행자가 보이는 태도 역시 가볍고 경망스럽다. 이미 바로 전에 라일리(아리아나 그란데)의 연애 문제가 방송으로 나가 엄청난 화제를 일으킨 데다,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브리는 정신없는 농담을 연발하며 핸섬한 민디 교수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으니, 이들은 혜성이 지구에 충돌할 것이라는 진실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할 상황에 처하게 되고 급기야 디비아스키가 소리를 치자, 언론은 그런 디비아스키를 미워하고 조롱하기 바쁘다.
과학자 둘이 나와서 혜성이 지구에 충돌해 인류가 멸망한다고 하는데 이것을 아무도 안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서 반전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 반전조차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하나의 정치적인 쇼인 것이다. 하지만 쇼든 어쨌든 혜성의 궤도를 바꾸기만 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에 민디 교수와 디비아스키는 드디어 안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해서 혜성을 파괴하러 가는 팀이 꾸려지게 되고 드디어 로켓을 발사하게 된다. 발사하는 로켓 안에서 쉬지 않고 혐오 발언을 내뱉는 파일럿 그리고 혜성 파괴를 앞두고 갑자기 귀환 명령을 내리는 대통령의 가벼움, 이 가벼움의 절정은 욕심으로 가득 찬 기업인인, 배시의 회장 피터이다. 이 피터라는 인물은 정말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성공한 기업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인물은 인성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으나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운 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보다 급이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예 상종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조차 이 인물의 말을 무시하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상 자본주의 사회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듯 생각된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저마다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민디 교수는 방송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것을 인정받아서 금세 유명인이 되고 브리와 바람까지 피우게 된다. 이렇게 민디 교수는 거의 친정부 인사가 되어 여러 일을 하지만 정작 피터의 방법을 믿지 못한다. 그 이유는 과학에 반드시 필요한 동료평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민디 교수는 방송에서 분노를 폭발시키고 만다.
그리고 처음으로 하늘의 혜성이 육안으로 식별 가능해졌을 때, 민디 교수가 던지는 말들이 인상적이다. 두려움의 말도 위험을 경고하는 것도 아닌, 그저 자신이 옳았음을 말하는 데에 그쳐야만 한다는 것,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냐고, 왜 믿지 않았냐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는 참으로 가관이다. 올린 대통령은 모든 것을 정치적인 이슈로 가져가려 한다.
피터의 사심이 포함된 제안에 의해 내린 자신의 결단을 곧장 시민을 위한 것으로 포장하고, ‘Just Look Up’을 외치는 민디 교수를 포함한 사람들을 상대로는 시민을 선동 한다고 몰아가며, 반대로 ‘Don’t Look Up’을 해야 한다고 이렇게 연설한다. 우리는 ‘Don’t Look Up’을 해야 한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해성 은 곧 기회다. 라고 하는 것 모두 정치적인 문제인 것이다.
아무리 올린 대통령이 정신이 나갔다고 해도 이미 발사한 로켓을 되돌리는 것은 선을 넘었다. 문제는 이 과장된 상황으로 아담 맥케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그것이 중요하다. 인간을 가볍게 만드는 것은 욕망이다. 그 욕망은 모든 것을, 위험까지도 무시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아담 맥케이는 말하고 있다. 피터의 방법은 틀렸다. 피터는 돈이 많고 성공한 기업가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을 성공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의 회사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고, 그는 얼마든지 돈으로 최고의 과학자들을 영입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모든 것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무엇이든지 한다. 그리고 올린 대통령은 그런 그를 믿는다. 그를 믿을 수 없음에도 믿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돈이 있고, 그에 말에 의하면 혜성은 곧 자원이고, 자원은 돈이고, 돈은 자본주의사회에서 힘이기 때문이다. 그 혜성을 독식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따돌리기까지 했다. 중국과 러시아를 배제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이점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모든 이득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피터를 믿는 바보 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 대통령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바로 욕망 때문이다. 하긴, 이 대통령이 혜성의 궤도를 바꾼다는 선택을 했을 때도 그저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욕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피터는 더 심하다. 동료 평가를 받지 않는다. 왜 받지 않았을까? 성공한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 때문일 수도 있다.
자기 확신, 듣기 싫은 얘기는 피하려는 태도, 앞에서 말했듯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취사선택 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은 그런 인간의 태도를 비판하고 인간의 실수를 보완하기 위해 발전해 왔다. 그러나 제 아무리 과학의 방법론이 엄중한 검증을 요구한다고 해도 정작 결정권을 지닌 위정자들, 권력자들이 저 모양이면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다. 이미 이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과학자들이 위기를 경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피터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세상은 끝장나고 만다. 올린 대통령은 피터를 너무 믿은 나머지, 피터가 실패 했을 경우를 대비한 플랜 B조차 세우지 못했다. 눈앞에 위기가 있는데도 그것을 보지 말라고 말하는 정신 나간 정부와 그런 정부의 편 가르기에 휘둘리는 대중들, 결국 인류는 대항할 방법을 잃고, 대통령을 비롯한 자본주의의 성공한 리더들이 골디락스 존에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가서 토착 동물들의 먹이가 된다는 이야기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역시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를 꼬집은 것이다. 우선 미지의 타 행성을 가는데도 아무런 옷을 입지도 않고 벌거벗은 채 무기도 준비하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밖으로 나가 눈에 보이는 동물이 아름답다며 손짓하다 도리어 그 동물에게 죽임을 당해 먹이가 되어버리는 광경은 잔인하기 전에 한심하다. 그리고 대부분이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라 번식과 생육에도 전혀 유리해 보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도 아담 맥케이는 인류가 멸망하게 될 때 끝까지 살아남는 이들은, 그 성공한 부자와 잘난 리더 그리고 사회 지도층이라고 으스대는 그것들은 사실 전인류에서 제일 멍청한 인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은 욕망이었고, 그 욕망이 사람을 가볍게 만들고, 위험을 무시하게 만든다. 그 결과 인간은 멍청해진다. 그리고 디비아스키는 또 하나의 진실을 알아낸다. 바로 그 삼성 장군의 10달러 사건, 영화에서 디비아스키는 그것이 ‘권력’일거라고 말한다. 언젠가는 모두가 그 과자와 물이 10달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다시 말해서 자신이 누군가를 속이고 그것으로 이득을 취해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일종의 장난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것, 어쩌면 아담 맥케이는 이 작품을 통해 그 권력의 속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눈부신 꼬리를 늘어뜨린 아름다운 혜성이 곧 죽음의 상징이 되어버리고, 그 안에서 어리석은 인간들이 벌이는 최악의 선택.... 그나저나 영화에 출현한 아리아나 그란데의 연기는 형편없었지만 곡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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