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격을 하기 몇 주 전, 뉴스에는 우크라이나 할머니가 등장해 사격 방법을 배우며 러시아를 응징할 거라고 다짐하는 모습이 보도 되었으며, 심지어 10대 어린이, 20대 여성들도 땅 바닥에 엎드려 사격 연습을 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사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악연은 뿌리가 깊다. 그 시기는 1930년대 일어난 지구 역사상 최악의 ‘대기근’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우크라이나는 ‘세계의 빵 공장’이라 불릴 만큼 비옥한 곡창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이 때의 기근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죽었다. 그 배경에는 우크라이나를 억누르려던 ‘스탈린’의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9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27년 소련에 공산주의 독재자 스탈린이 집권 했는데 스탈린은 집권하자마자 ‘농업 집단화’를 밀어 붙였다. 농민들의 토지를 몰수해 집단농장에 소속시키고, 각 지역의 농민들을 각출해 집단농장에 보내는 식으로 말이다.
절망한 농민들은 자포자기에 빠졌고, 생산량은 급감했다. 거기에 흉년까지 겹치면서 농민들의 생활은 더 피폐해져만 갔는데, 하지만 소련 공산당은 풍작이 일어난 해를 기준으로 곡식을 징발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우크라이나는 그 징발량을 채울 수 없었다. 1931년 스탈린은 징발량을 채우지 못한 집단농장에 다음해에 씨앗으로 쓸 곡식까지 넘길 것을 명령했다. 그것도 모자라 공산당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씨앗을 싹싹 긁어갔고, 달아나는 주민들을 쫓아가 처형했다. 종자까지 모두 빼앗긴 우크라이나 농민은 이듬해 파종을 할 수 없었으며 그렇게 1932년~1933년, 공포의 대기근이 시작되었다. 우크라이나에는 정말 생지옥이 펼쳐졌다.
공공보건기록에 따르면 1933년 4월 한 달에만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49만 3천6백 44명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농민들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가축까지,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모조리 잡아먹었다. 그러다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지자 심지어 인육을 먹는 상황에까지 처하게 되는데 1932년 가을부터 1933년 봄 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식인 혐의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약 2천5백 명에 달한다.
발각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실제 식인을 저지른 사람은 더 많을 것이라 추정된다. 이와 같은 대기근을 ‘홀로도모르’(Holodomor)라고 불리는데, 홀로도모르는 우크라이나어로 ‘기아에 의한 살인’이라는 뜻이다. 1933년 우크라이나 남성의 평균 수명은 7세, 여성은 10세였다고 하니 그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학자들은 홀로 도모르로 사망한 사람이 200만명에서 700만명 사이라고 추정한다. 다만 정확한 피해규모는 알기 어려운데, 당시에는 정확한 인구 통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절인데다, 소련이 60여년간 통치를 계속하면서 많은 자료를 없애거나 왜곡했기 때문이다.
징발된 곡물이 제대로만 분배되었다면 끔찍한 대량 아사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소련은 우크라이나인들이 굶어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징발한 곡물을 외국에 수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기근 기간에도 소련의 농산물 수출량은 증가하고 있었다. 소련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살길을 찾아 외국으로 떠나는 것도 막았다. 항의하는 농민들에게는 소련 비밀경찰의 체포와 고문, 처형이 뒤따랐다. 그렇기에 다수의 역사학자들은 대기근 사태에 상당부분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억누르려던 스탈린의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다.
여러 국가가 우크라이나의 이 시기를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필적하는 ‘제노사이드’로 규정하는 이유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돈 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에 대해 분리 독립을 승인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상처를 다시 후벼 파는 것과 같다.
이 동부 2개 주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계 주민 비중이 가장 높은데 그 이유는 이 대기근으로 노동력을 착취할 만한 우크라이나인 대부분이 죽고 버려진 땅에 스탈린이 러시아인을 이주시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 하면서 과거의 원한이 되살아나고 있는데 90년 전 비극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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