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벌써 2달이 지났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여러 가지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 독일이 일단 국방비를 증액하겠다고 나섰고, 또 많은 국가들이 지금 국방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더 많은 예산을 국방 쪽으로 증액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NATO)에 곧 가입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데, 사실 이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려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를 들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당시에도 핀란드에서 나토 가입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진지해 보인다.
올해(2022년) 6월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나토 정상회의가 있을 예정인데, 아마도 이때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여부가 결정 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핀란드의 총인구는 약 550만 명 정도이며, 이중에서 전쟁이 발발하거나 국가의 위기 상황에 닥쳤을 때, 바로 소집을 할 수 있는 예비군까지 합하면 약 30만 명에서 최대 90만 명 가까이 모집이 가능하다고 한다. 핀란드는 사실 유럽 선진 국가들 중에서는 매우 드문 징병제를 가지고 있는 국가로 핀란드 남성의 ¾ 정도가 군복무를 마쳤다고 한다.
그리고 핀란드는 안보와 관련해 여러 가지 계획들도 짜여 있다. 적어도 6개월 동안은 버틸 수 있는 식량인 곡물과 주요 연료를 비축해야하며 제약회사 같은 경우는 수입약품을 3~10개월 사용치를 확보해 놓아야 된다고 한다. 또 일정 규모가 되는 건물들에는 항상 지하에 방공호가 필수적으로 있어야 되고, 유사시에는 주차장, 아이스링크, 수영장 등의 시설들이 바로 대피 장소로 전환이 가능하다.
핀란드는 ‘내셔널 디펜스 코시스’(National Defence Courses)라는 안보 교육 시스템이 있어 주요 기업의 기업인들과 정치인들, 교회 성직자들, 언론인들 그리고 비정부 단체의 지도자들이 함께 1년에 4번 정도 모여서 안보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주로 군 장교라든지 정부 관료들이 와서 안보 교육을 진행한다고 하는데, 지금 현재 핀란드의 안보 상황이라든지 그리고 위기시의 시뮬레이션까지 함께 교육한다고 한다.
지방에서도 이와 비슷한 것이 이루어지는데, 여기는 약 6만 명 정도가 참여한다고 한다고 하며 예를 들어 만약에 발트 해가 봉쇄된다면 식료품과 생필품을 어떻게 조달하고 분배하는지 등을 시뮬레이션하고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다. 이렇듯 핀란드가 안보에 철저한 이유는 사실 러시아 때문이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매우 가까운 국가로 국경을 서로 접하고 있다. 제정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보다 핀란드의 수도인 헬싱키와 훨씬 가깝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는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사이가 원래 늘 좋지 않다.
핀란드는 꽤 오랜 시간동안 스웨덴 왕국의 일부였다. 12세기~1809년까지 러시아에 할양될 때까지 스웨덴 왕국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리고 볼셰비키 혁명이 끝나고 바로 적백내전이 일어나게 되는데, 러시아에서는 적군이 승리했지만, 핀란드에서는 백군이 승리했다. 그리고 1920년 ‘타르투 조약’에 의해서 국경선이 그어지고 독립을 하게 된다. 1932년에는 소련하고 서로 불가침조약까지 맺기도 했었다. 그런데 1939년 여름이 지나면서 소련 측에서 핀란드 쪽에 무리한 요구를 해오기 시작한다.
당시 소련이 레닌그라드, 즉 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핀란드 쪽에 영토도 좀 내놓고 또 국경선도 양보를 하라는 요구를 하게 되는데, ‘라플란드’와 ‘카렐리야’ 지역의 영토로 내놓고, 국경선도 서쪽으로 더 옮기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핀란드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은 항코(Hanko)항을 30년간 소련에게 조차(租借)하라는 것이었다. *조차- 다른 나라에서 일시적으로 영토의 일부를 빌리는 일.
이 항코 항은 헬싱키에서 조금 더 서쪽으로 나와 있는 곳이며 핀란드 만에서 발트 해로 빠져나가는 곳에 위치해 있어 딱 보기에도 매우 전략적인 요충지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당시 소련의 군대가 워낙에 막강하고 그리고 소련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핀란드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핀란드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는 양보를 할 생각이긴 했는데, 이 항코 항만은 절대 내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소련이 여기에 군대를 주둔 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한번 군대가 들어오면 나가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핀란드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련과의 이러한 협상이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핀란드 측의 입장은 점점 더 단호해졌는데 그 이유는 소련은 이미 그 해 여름부터 핀란드를 침공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39년 11월 26일 소련 측에서 카렐리야의 국경 부근에서 핀란드가 소련을 공격했다고 거짓주장을 하고는 11월 30일 아침 9시, 소련군이 헬싱키 공습을 시작으로 핀란드를 침공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겨울전쟁’(Winter War)이다.
사실 핀란드는 이전부터 소련으로부터 크게 안보 위협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이 ‘노르딕 국가’들과 함께 안보 협력을 추구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그런데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주변 국가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특히 스웨덴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이때 스웨덴이 딱 잘라 거절했다. 스웨덴 입장에서는 당시 서남쪽에 나치 독일이 굉장히 부담스러웠고 바로 직전에 소련과 독일이 불가침조약을 맺었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소련 입장에서는 상당히 마음 놓고 핀란드를 침공할 수 있었고 스웨덴이나 다른 유럽 국가들이 독일을 굉장히 경계해야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 *노르딕 국가-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아이슬란드.
영국과 프랑스 측에서 핀란드를 도와주겠다고 이야기는 했었지만 이마저도 사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영토를 지나가야만 하는 상황이고 거기에 스웨덴의 강경한 거부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리고 당시에 폴란드를 나치독일과 소련이 나누어먹은 상태였고 또 체코슬로바키아도 나치독일의 손에 떨어진 상황이었다. 핀란드 보다 군사력이 강하다고 여겨졌던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도 버티지 못 했는데 핀란드를 도와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 제 코가 석자였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핀란드는 그야말로 고립무원, 즉 혼자 싸워야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는 굉장히 용맹스럽게 싸웠다. 어마어마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서 침공해 온 소련군 앞에 핀란드의 당시 인구는 약 350만 명이 조금 넘었는데 여기서 쥐어짜내듯이 모은 병력이 30만 명 정도라고 한다. 무기나 장비도 굉장히 열세였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소련은 당시에 핀란드 남쪽 국경지역에 주력부대를 배치를 했다. 그리고 핀란드도 자신들의 최고 사령관이자 정말 존경받는 장군이었던 ‘칼 구스타프 만네르하임 장군’의 이름을 딴 만네르하임 방어선을 사수했다. 그 당시 핀란드가 정말 잘 싸웠는데, 핀란드 영내로 소련군을 끌어들인 다음에 제대 간의 연계를 끊어놓고 고립시킨 후 각개 격파를 하는 방식과 솜씨 좋은 저격수들을 배치해 소련군을 저격하는 방식으로 싸웠다. 여기서 소련군 약 259 명을 사살한 ‘시모 해위해’(Simo Hayha)라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저격수가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핀란드는 겨울전쟁 당시 엄청 추었다고 한다. 물론 소련도 추운 국가이긴 하지만 당시 핀란드는 영하 43°의 엄청난 혹한이었기 때문에 거의 18만 명 이상이 동상을 입거나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시 소련군의 사령관들의 지휘 능력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얘기가 있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스탈린이 겨울전쟁 전에 매우 뛰어나거나 자신에게 라이벌이 될 만한 혹은 경계해야 될 만한 장군들을 모두 ‘대숙청’ 때 처형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봄이 오면서 날씨가 풀리고 그리고 막판에는 소련이 거의 100만 군대를 동원하는 물량공세를 핀란드가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결국 1940년 3월 12일 ‘모스크바 협정’을 맺고 처음에 이야기 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영도, 즉 핀란드의 11%의 영토를 소련 측에 내어주게 된다. 그 이후에 핀란드가 독일 나치가 소련을 침공했을 때 나치와 동맹을 맺고 소련을 공격했던 적도 있다. 이것이 1941년 6월에 있었던 일이고 사실 겨울전쟁이 끝나고 1년밖에 안 된 후에 있었던 전쟁이라 이것을 두고 ‘계속전쟁’(Continuation War)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결국 독일이 소련에게 패배하게 되고 또 핀란드는 연합국 측에 다시 합류하게 되면서 결국에는 잠시 수복했었던 땅을 다시금 소련에게 넘겨줘야만 했다.
핀란드는 대표적인 중립국이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빈 체제’가 성립 되면서 스위스에게 중립국의 위치가 부여되면서 국제사회에 중립국이라는 것이 처음 등장 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북유럽은 중립국의 위치를 선점한 국가들이 많았다. *빈 체제- 1815년 빈 회의를 계기로 유럽 열강들 사이에 형성된 복고적 세력 균형 체제.
스웨덴 같은 경우는 자국의 국방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자립적인 중립국으로 분류되지만 핀란드는 친 소련 중립국이라고 불릴 만큼 겨울전쟁도 있었고 그리고 소련에 가장 가깝게 붙어 있었기 때문에 늘 소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나토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그리고 바르샤바 조약기구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그 대신 소련하고는 1948년 ‘핀란드-소련 우호협력상호원조 조약’을 맺었는데 이 조약은 ‘상대방을 상대국으로 하는 어떤 안보 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그리고 위기 상황에 닥쳤을 때는 소련의 군사력에 의존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이 조항에는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담고 있는 전쟁이 났을 때 자동적으로 개입하는 조항은 담겨 있지는 않았다.
사실 이 조약은 냉전 시기에 바로 옆에 붙어 있고 또 겨울전쟁의 경험이 있었던 핀란드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조약이었다. 그래서 핀란드는 미국의 ‘마셜 플랜’의 혜택을 받지 못했고 1992년이 되어서야 EU에 가입 신청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당시는 이미 공산주의 사회주의 블록이 무너진 상황이었고 무게의 추는 이미 서방 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안심을 하고 EU에 가입신청을 한 것이라 생각된다. *마셜 플렌- 미 국무장관 조지 마셜이 제창한 전후 유럽 원조 계획으로 공산주의 확산 방지가 목적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협상을 할 때 이번에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사실 이 핀란드화라고 하면 무언가 긍정적인 것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핀란드는 유럽에 있는 선진국이고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는 그러면서도 안보적으로도 탄탄한 중립국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핀란드화는 핀란드 국민들에게는 다소 굴욕적인 단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핀란드화의 원래 뜻은 소련에 의존하고 또 눈치 보던 핀란드를 빗대어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약소국이 강대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자기 검열을 하는 것을 핀란드화라고 이야기 한다.
이러한 말은 1960년대 서독에서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빌리 브란트’ 총리가 ‘동방 정책’(Ostpolitik)을 펼칠 때 이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이를 빗대어서 ‘핀란드처럼 될 것이냐’라면서 이 핀란드화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고 그리고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당시 ‘키신저’와 ‘브레진스키’가 우크라이나가 이 핀란드화를 추진해야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정작 핀란드 사람들은 그 당시가 상당히 흑역사였다고 기록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소련에 대해서 반대하는 말을 하거나 했을 때 혹시라도 잘못되지 않을까하고 스스로 검열하며 지냈다는 증언들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핀란드화라는 것은 그들에게 그리 유쾌한 기억은 아닌 것이다.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나토 가입 국가들 그리고 파트너 국가들과 여러 가지 안보 협력을 하고는 있다. 당연히 소련이 해체되고 난 다음에 핀란드의 외교 공간이 넓어진 것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토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핀란드 국민들은 그동안 회의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2017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나토 가입을 찬성하는 핀란드 국민들은 19%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히려 반대하는 숫자가 52%로 훨씬 높았다.
그런데 2022년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난 뒤에 했었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찬성한다는 여론이 무려 62%로 훌쩍 뛰어올랐다. 현재 상황으로서는 핀란드가 아마도 나토 가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 또한 마찬가지로 말이다. 물론 아직까지 시간이 남아 있기는 하고 그리고 가입 결정을 하는 데는 나토 30개국이 모두 찬성을 해야 되기 때문에 조금 두고 봐야 되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반대하는 국가는 거의 없지 않을까하는 것이 중론이다. 설사 핀란드가 가입을 한다고 하더라도 핀란드의 영토 내에는 외국 군대가 주둔하지 않고 또한 핵무기로 배치하지 않는? 이런 정도의 조건을 내걸지 않을까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서 러시아가 굉장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발트해 쪽에 ‘칼리닌 그라드’라는 러시아령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 핵무기를 배치하겠다는 이야기를 러시아 측에서 꺼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전 지역을 점령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고 결국 우크라이나도 전부 점령하지 못한 상황에서 오히려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을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면 러시아는 도대체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일까? 아이러니 하게도 나토의 동진을 막기 위한 이 전쟁이 오히려 나토의 동진을 부추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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