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식량 문제는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꿀벌이 사라지면 식량 부족 사태를 가져오고,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으로 연어가 헐값이 되면서 한국에 무한 연어 리필집이 들어서기도 했다. 이렇게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건들이 서로 연결이 되어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다음과 같은 기사들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사태발 식량 위기 경고,’ ‘전쟁이 부른 전 세계 식량 재앙’ 등 식량 위기를 걱정하는 전문가들의 진단은 늘 있어왔지만, 이번은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유는 우리가 경험해본 적 없는 초연결적인 현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3대 곡창지대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북미의 프레리,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그리고 우크라이나,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농업선진국도 아니고, 농업 생산 효율도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며, 농기구들도 구형에다 모두 낡아 빠졌다. 그런데 어떻게 우크라이나는 농업 강국이 될 수 있었을까?
우크라이나 농업 역사는 한참 거슬러 올라가 고대 그리스 때부터 시작된다. 우크라이나 지역의 식량으로 그리스까지 먹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우크라이나와는 달리 온통 산으로 되어있다. 이렇게 산이 많기 때문에 그리스는 농사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었으며, 산이 아닌 평지조차도 토양이 좋지 않아서 농사를 하기에는 까다로운 곳이었다.
게다가 연간 400mm 정도의 비가 내리는 매우 건조한 지역이다. 그런데 그리스의 이러한 환경과 조건에서 키우기 좋은 작물이 바로 포도와 올리브인데,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이 포도와 올리브로 와인과 올리브유를 만들어 후에 밀 등의 농작물과 교환, 즉 무역을 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이때 그리스가 밀을 수입하던 지역이 바로 우크라이나 남부지역과 크림반도 지역이다.
현재는 최첨단 농기계, 농약, 비료 등 농사 기술도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특히 비료는 인류 역사를 바꾼 대발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비료의 등장 이후로 사람들이 식량이 부족해서 굶어 죽는 일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비료고 뭐고 아무것도 없음에도 우크라이나의 밀은 마르지 않았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체르노젬’이라고 하는 ‘흑토’ 때문이다. 이 흑토는 마치 거름처럼 생겼으며 유기물, 영양분, 특히 수분 또한 가득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흙의 황제’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흑토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서남부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이 지역은 나무는 별로 없지만 풀이 굉장히 무성한 초원지대로 이루어져있으며 이런 지역을 ‘스텝지역’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지역에서 풀이 자라고 죽는 것이 반복하면서 흙에 유기물이 계속 쌓여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흑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전 세계 옥수수와 밀 수출량에서 우크라이나가 차지하는 비중(2021년 기준)은 옥수수는 13%, 밀 9%, 보리는 10%, 해바라기유는 무려 40%가 넘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크라이나는 농업 기술도 낙후되어 있고 농기계도 낡은데다 생산 효율 또한 높지도 않은데 이러한 수출량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세계 농산물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농사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전시에는 농경지 보다 주요 도시와 산업 시설에 병력을 투입하기 때문인데, 농사는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전쟁 중이다 보니 환경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농산물 수출을 중단했다. 우선적으로 자국민과 병사들이 먹을 식량이 중요하니까 말이다.
사실 전쟁 중에 수출을 하고 싶어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수확된 농산물은 흑해를 거쳐 전 세계로 수출되는데, 현재 항구 도시의 격전으로 해상 운송로도 막힌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중만큼 전 세계 공급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10% 정도면 소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정말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밀 공급이 10%가 빠지는 동시에 가격이 60%나 급등했기 때문이다. 1~2개월 사이에 밀 가격이 이 정도로 폭등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의 주 수입국을 보면 유럽, 중국, 인도, 이집트, 터키 등이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항상 먹어왔던 농산물이 갑자기 증발해버린 것이다. 그럼 다른 지역에서라도 농산물을 수입해 오던가하는 대체재를 빨리 찾아야 하는데, 이 많은 국가들이 한꺼번에 다른 지역의 식량을 수입하려하다 보니, 당연히 물량은 모자라고 글로벌 식량 가격은 폭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에서 꽤 많이 생산되고 있는 해바라기유를 보면 전쟁 때문에 전 세계 해바라기유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인데, 그런데 뜬금없이 콩기름 가격도 10%나 올랐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바라기유를 많이 사용하지는 않지만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이 해바라기유를 엄청나게 사용한다. 빵, 통조림, 소스, 스프 등 안 들어가는 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바라기유가 막히니까 다른 기름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콩기름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현재 우리나라의 콩기름 가격은 전년 대비 1000원 이상이 올랐다. 가정뿐만 아니라 업소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서민들의 먹거리인 튀김, 후라이드 치킨 등의 가격도 오를 것이다.
밀가루의 가격 또한 마찬가지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에서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을 찾기가 힘들 것이다. 면류나 빵을 제외하더라도 고추장, 햄, 어묵, 맛살, 떡볶이 등 다수의 식품에 밀가루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산 밀을 많이 사용하지는 않지만, 우리 식탁에도 이에 따른 간접 영향의 충격이 그대로 올 것이다. 현재 글로벌 밀 가격이 30% 이상이나 올랐으니 그 후폭풍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짐작된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2010년, 전 세계적 이상기후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역의 밀 생산량이 줄어들었던 적이 있는데, 이때 러시아가 곡물 수출 금지를 선언했다. 이렇게 되자 2010년 말부터 밀 가격이 엄청나게 오르더니 2011년에 들어서자 전년 대비 밀 가격이 70%나 상승했다. 하지만 이때와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2011년 밀 가격 폭등은 자연현상에 의한 흉작이었기 때문이다. 자연현상은 해가 바뀌면서 비교적 빠르게 가격 안정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 농업 상황을 보면 전쟁 중에서도 농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농사를 적극적으로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군에 차출되고 피난길에 오르느라 농사를 할 사람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주요 농경지는 남부와 동남부지역인데 현재 이곳은 집중 공격을 받은 지역들이 많고 아직도 치열한 격전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다.
또한 농사를 지으려면 트랙터 등 농기계가 다녀야 하는데 도로는 파괴되고, 지뢰까지 곳곳에 심어져 있는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농사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 당장 전쟁이 끝난다면 금방 회복이 가능할까? 아니다. 도로와 철도, 항구가 파괴되면서 교통망이 마비된 상황이고 지뢰나 폭발 위험성을 가진 위험물들을 제거한 뒤에 도로와 항구를 복구시켜야 하는데, 이러한 일들을 모두 다 끝내려면 시간이 꽤 많이 걸릴 것이라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복구는 시작에 불과하다.
진짜 문제는 농사는 시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파종하는 시기, 작물을 관리하는 시기, 수확해야하는 시기 등 이러한 시기들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 때문에 이 시기를 다 놓치고 있다. 농사를 해본 사람은 다들 알겠지만 특히 농사는 봄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봄에는 밭에 비료를 뿌리고 작물을 심을 준비를 마친 후에 파종까지 끝내야만 하는데, 지금 이 시기를 그냥 다 날려 먹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크라이나의 경우에 가을에 파종해서 봄에 수확하는 ‘겨울밀’ 농사를 주로해서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겨울밀은 9월,10월에 파종해서 다음해 7,8월에 수확하는 작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어 이번 사태가 9월까지 간다면 이 문제(식량부족과 가격 폭등)는 훨씬 크고 장기화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연료와 비료 문제가 있다. 위에서 우크라이나의 흑토가 아주 좋은 흙이기 때문에 비료가 없어도 작물이 잘 자란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 흑토에조차 비료를 사용한다. 같은 땅에서 계속해서 작물을 키워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해가 지날수록 땅속 유기물 함유량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생산량도 줄어들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흑토에도 비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러-우 전쟁 이후 비료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이 비료는 또 러시아가 전 세계 최대 비료 생산국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우크라이나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러시아는 밀도 많이 생산하고 있으며 매년 전 세계 비료 생산량의 13%인 5,000만 톤의 비료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유럽 등 40여 개 국가에서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시행 중이다. 이 제재는 전쟁이 끝나더라도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이 나라들을 ‘비우호국’이라고 지정하고 보복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밀과 비료도 포함되어 있다. 식량과 자원을 인질로 삼은 것이다.
비료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연료문제다. 우크라이나에서 소비하는 연료의 60%는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통해 들여온다. 농기계를 굴리고 농사를 지으려면 연료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데, 이것조차 막혀버린 것이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 때문에 우크라이나 농업이 정상화되는데 까지는 최대 3년이 걸린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가격 폭등 역시 그때까지는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우크라이나 상황은 별개로 두고 러시아 상황까지 이야기하면 정말 끝이 없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러시아 역시 밀을 포함한 다양한 곡물의 주요 수출국이니 말이다.
이런 식의 초연결적인 현상은 우리가 경험해 본적 없는 현상이며, 2차 세계대전을 제외하면 이렇게 세계 경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국가 간 전쟁도 처음이다. 사실 우리나라와 우크라이나는 직접적인 거래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여파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그리고 동네 자영업자들에게, 또 우리 식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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