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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로 인한 북극곰과 회색곰의 잡종, 그롤라 베어의 출현.

by 1972 trist 2022. 4. 19.

 

2006년 ‘짐 마텔’(Jim Martell)은 캐나다 북쪽 ‘삭스 하버’(Sachs Harbour)에서 ‘북극곰’ 한 마리를 사냥한다. 물론 합법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가 사냥한 곰은 어딘가 좀 이상했는데, 털 색깔은 영락없는 백색의 북극곰이었지만, 긴 발톱과 곱은 등, 그리고 짧은 주둥이와 짧은 목 등 얼굴 생김새는 ‘회색곰’에 가까웠다. 

 

Grolar bear
그롤라 베어가 자고있다.

 

캐나다에서는 원주민의 동행 하에 진행되는 북극곰 사냥은 합법 이었으나 회색곰 사냥은 불법이었던 까닭에 이 사냥을 보고받은 캐나다 ‘야생동물보호국’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만약 이 곰이 북극곰이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만에 하나 회색곰이라면, 짐 마텔은 100달러 이상의 벌금과 최대 1년의 징역형에 처해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DNA 분석 결과, 이 곰은 수컷 회색곰(Grizzly)과 암컷 북극곰(Polar bear)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인 ‘그롤라 베어’(Grolar bear)였다. 

 

2004년 독일의 한 동물원에서 북극곰과 회색곰의 잡종이 태어난 사례는 있었지만, 이렇게 야생에서 잡종 곰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으며,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이후 2010년에 또 다른 그롤라 베어가 발견되었고, 2012년과 2014년 사이에 무려 6마리의 잡종곰이 발견되었다. 그러던 2014년, 야생동물 탐험가인 ‘제이슨 매튜스’(Jason Matthews)와 ‘케이시 앤더슨’(Casey Anderson)은 실제로 이들이 야생에 존재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알래스카’로 탐사를 떠났고, 우여곡절 끝에 잡종곰으로 추정되는 녀석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데 성공한다.

 

 

그들은 이 사진을 현지에서 바로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진화생물학자인 ‘베스 샤피로’(Beth Shapiro) 교수에게 전달해 자문을 요청했다. 그녀는 이 사진을 보고 흥분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박! 이 사진 진짜에요? 이것은 혼혈종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에요! 이런 사진은 처음 봐요. 진짜 놀랍군요! 정말 굉장해요. 어서 결과를 보고 싶어요.” 

 

그리고 이런 일련의 상황들은 많은 생물학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야생에서 잡종이 탄생한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흔치 않은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회색곰과 북극곰은 서식지가 거의 겹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야생에서 교배를 했다는 것은 두 녀석을 격리시켰던 어떤 장벽이 깨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도대체 북극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잡종곰 등장의 원인으로 ‘지구온난화’와 ‘숲의 무분별한 개발’을 지목했다. 

 

Global Warming
지구온난화 때문에 북극곰은 삶의 터전을 잃고있다.

 

지구가 점차 더워지고 북극의 빙하들이 녹자, 서식지와 사냥터를 잃은 북극곰들은 어쩔 수 없이 아래쪽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회색곰 또한 광산과 도로 건설 등으로 숲이 개발되면서 기존 서식지가 축소되었는데, 북극해 지역이 따뜻해진 덕분에 이들은 자연스레 위쪽으로 서식지를 옮겨갈 수 있었고, 그 결과 이 둘이 마주치는 일이 많아졌을 것이다. 

 

실제로 알래스카 ‘카크토빅’(Kaktovik)의 ‘이누이트족’(Inuit)은 고래를 사냥한 후 지방과 살점을 발라내고 남은 뼈들은 버리는데, 예전에는 이 뼈 더미를 북극곰이 모두 차지했었지만, 최근에는 뼈 더미에서 회색곰이 목격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에 몬태나 대학교의 ‘크리스 서빈’(Chris Servheen) 교수는 이러한 고래 사체 등 먹이들이 둘의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이곳에서 둘의 교배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최근 2021년, 밴더빌트 대학의 생물학자인 ‘라리사’(Larisa DeSantis) 박사는 가까운 미래에는 이 잡종곰이 북극곰을 대체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회색곰은 사슴이나 다람쥐, 연어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곤충과 식물의 뿌리, 풀,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먹는 잡식성 동물인데, 그롤라 베어 역시 두개골 형태가 이들과 비슷하기 때문에 식성도 닮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북극에 해빙이 점차 녹아가는 지금 이 시점에서 바다표범이나 물범 사냥에만 익숙한 북극곰보다 잡식성인 그롤라 베어의 생존 확률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즉, 점차 따뜻해지는 기후는 북극곰을 밀어내고, 이들의 빈자리는 잡종곰인 그롤라 베어로 대체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꼭 집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잡종은 당나귀와 말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처럼 생식 능력이 없어 자연에서 도태되기 쉬운 종인데, 왜 과학자들은 그롤라 베어 같은 잡종이 번식을 성공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mule
말과 당나귀의 잡종인 노새.

 

말과 당나귀는 약 200만 년 전에 분기되어 각자의 길을 걸어오면서 그 과정에서 염색체가 재배열되었다. 그 결과 말은 염색체가 64개이며, 당나귀는 62개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는 말에서는 32개, 당나귀로부터는 31개를 받게 되니까, 총 염색체 숫자는 63개로 홀수가 된다. 결국 노새는 상동염색체가 홀수라 짝이 맞지 않아 생식을 위한 감수분열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후손을 낳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롤라 베어는 얘기가 달라진다. 회색곰과 북극곰은 약 15만 년 전에 분기되었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유사할뿐더러 염색체 개수도 74개로 서로 같다. 따라서 이들로부터 태어난 잡종곰도 74개의 염색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성공적인 번식이 가능한 것이다. 즉, 그롤라 베어의 행동과 형질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합하기만 하다면 이들이 북극곰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잡종의 등장, 기후변화는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생물들에게는 비극이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종의 탄생과 진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이런 잡종의 탄생은 비극이라 할 것도 아니며, 이들을 마치 괴물로 취급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왜냐하면 잡종은 진화라는 틀 안에서 나타나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 인간들마저도 잡종의 후예인 것이다. 

 

우리 인류에게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와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있다. 이는 수십만 년 전, 어딘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인류의 선조들 사이에서 잡종이 탄생했고, 이 잡종은 또 다른 종들과 유전자를 교류하며, 점진적으로 변화해 나갔으며 이러한 잡종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지금의 우리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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