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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opinion

송해 향년 95세, 투병 중 자택에서 별세....

by 1972 trist 2022. 6. 8.

 

Songhae
국내 최고령 방송인 송해가 세상을 떠났다

 

국내 최고령 방송인 송해가 세상을 떠났다는 너무도 가슴 아픈 비보가 전해졌다. 송해는 1988년부터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아 국내 최장수 진행자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국민 MC로 오랜 세월 국민과 함께 했다. 

 

필자는 송해의 이름이 뉴스 기사에 오를 때마다 혹시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소식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곤 했다. 송해는 지병인 폐렴 관리 등의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병원에 입원해 검사와 치료를 받아왔으며 코로나 확진으로 치료 후 무사히 복귀하기도 했다. 그리고 34년간 진행해온 ‘전국노래자랑’을 떠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라고도 불리던 그는 국민들의 영원한 연예인이었다. 이제는 별이 되어버린 그에게 동료, 후배 연예인들은 물론 온 국민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가로스를 누비며
송해의 방송인 시절

 

송해는 어릴 적부터 끼 많은 개구쟁이로 동네에서 꽤 유명했다고 한다. 1949년에 평양 국립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졸업 발표회에서 노래를 시작하게 되지만 이듬해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초기에는 고향에 머물렀는데 당시 그는 구월산 일대에 활동하던 공산당 유격대의 모병(거의 징병)을 피하려고 인근 마을에 숨었다 들어오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리고 UN군이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서울이남 지역까지 철수하던 때, 집에서 나왔는데 그것이 어머니와 여동생과의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송해는 바로 북한 인민군의 공세로 인해 재령(해주)에서 연평도에서 미 군함에 타면서 부산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이때부터 실향민으로 바닷길을 건너왔다고 해서 바다 海(해)자를 예명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송해는 부산항에서 군에 입대하게 되어 통신병으로 복무하면서 1953년 7월 27일에 체결된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의 통신문을 모스 부호로 전송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군대 선임이 혼자였던 그에게 자신의 여동생을 소개해주었는데 그녀가 바로 그의 아내 석옥이 여사였다. 군 전역 이후 송 해는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정식 데뷔하게 되면서 악단 공연의 특성상 진행을 하면서 입담을 살려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MC 경험을 쌓게 된 것이다. 이후 송해는 1963년에 단역 영화배우로 데뷔하기도 했다. 송해의 가수로서의 대표곡은 ‘나팔꽃 인생,’ ‘신명나는 세상,’ ‘유랑 청춘,’ ‘내 인생 딩동댕’ 등이 있다. 

 

송해는 다양한 예능을 가져야 하는 악극단의 특징 덕분에 만능 연예인으로 성장해 여러 무대 및 방송에 출연했는데 조연급 코미디언으로 활약하기도 했고, 또한 동양방송이 매일 아침 라디오 채널을 통해 방영했던 ‘가로수를 누비며’의 진행을 맡으면서 운전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다만, 1986년 아들의 오토바이 사고 이후, 그 충격으로 한동안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하면서 17년 동안 맡아온 진행자 자리에서 내려오기도 했다. 

 

송해의 가족
송해의 가족

 

이후 아들을 잃은 충격을 잊기 위해 참여한 프로그램이 바로 ‘전국노래자랑’이었다. 그는 1988년 5월부터 전국노래자랑을 맡아 30년을 넘게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다. 이는 역대 한국의 현역 방송인 역사상 가장 장수하고 있는 국내 단일 프로그램 최장수 진행자를 기록했다.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마다 밝히기를 생애 마지막 전국노래자랑을 자신의 고향인 황해도 재령군이나 학업을 했던 해주시에서 하고 싶다고 했다. 

 

특집 프로그램이었던 ‘송해야 고향 가자’에서 자신의 고향인 황해도 재령군 쪽으로 가기 위해 남북체육교류협회의 남북 응원단으로 북한으로 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방송 당시 또 다시 남북관계가 틀어지면서 남북체육교류협회 행사도 무기한 연기되었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방북이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다. 

 

전국노래자랑은 한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일본, 미국, 평양에서까지 공연했다. 하지만 평양 공연 당시, 북한에서 그의 한국 전쟁 참전 경력을 문제 삼아 출입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한 일화로 2003년 평양 노래자랑 프로그램을 위해 그가 방북해 있는 동안 자신을 담당했던 북측 안내원과 친해져 막역한 사이가 되었는데 그러다 평양 노래자랑이 끝난 후 함께 술을 마시던 중에 안내원이 재령을 코앞에 두고 가지 못하는 송해에게 “이젠 거기 가봤자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라며 위로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오해한 송해가 “월남한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목숨을 잃은 것이냐?”라고 묻자 “그 말이 아니라 흐르는 강이든 솟아 있는 산이든 52년의 세월 동안 모든 것이 다 달라지지 않겠느냐?”라고 대답했다. 또한 송해가 알고 있던 재령의 모습은 더 이상 없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서야 송해는 자신이 월남하고, 벌써 52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깨달았다고 한다. 

 

송해는 아내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1953년 결혼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어려운 형편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살아야 했는데 그러다가 결혼 63년째인 2015년 결혼식을 올려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송해 부부의 결혼식은 당시 한 방송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으며 당시 방송에서 송해는 아내에게 천천히 걸어오라며 손을 꼭 잡아 주었고, 이내 두 사람은 벅찬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국내 최고령 방송인 송해
안타갑게도 아내의 임종을 보지 못한 송해

 

그리고 이어 송해는 방송을 통해 아내를 위한 편지를 낭독하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는데 군복무중 아내를 만났다는 송해는 “아내는 집안의 장녀였어요. 아무것도 없는 사람과 결혼해주었어요”라며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내는 지난 2018년 지병인 폐렴이 악화되어 향년 8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송해는 당시 독감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 직후 아내의 비보를 접한 것으로 알려서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송해는 오랜 시간 방송활동을 해왔으며 연예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현역 최고령 연예인으로 일화가 참 많다. 한번은 웬만해서는 남들에게 잘 수그리지 않는 조영남이 송해 앞에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빈 적도 있었다.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송해, 조우종, 조영남, 이경규, 김수미, 박명수가 추석을 기념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는데 이날 방송에서 송해와 조우종은 가장 먼저 도착해 다른 출연진들을 기다렸다. 

 

이어 30분이나 늦게 도착한 조영남과 이경규는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거듭 사과했다. 늦게 도착한 이경규와 조영남은 오히려 송해의 매니저인 조우종을 나무랐고, 결국 이른 보다 못한 송해의 화가 폭발한 것이다. 송해는 조영남과 이경규에게 호통을 치며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무서운 모습을 보였다. 이에 조영남은 화가 난 송해 앞에 무릎을 꿇으며 “잘못했습니다”라고 고개 숙여 사과 했다. 그러나 송해는 “지각이 한 두 번 이었어야지”라며 지적했다. 

 

이후 방송을 위해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 하긴 했지만 송해는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크게 혼을 내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방송을 떠나 큰 어른이었던 영원한 연예인 송해, 국민들은 그에게 오랜 시간 고생 많으셨고 감사했다고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내고 있다. 일요일의 남자로 시청자들에게 매주 웃음과 감동을 주었던 고인이 부디 그곳에서 편히 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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