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제 2차 세계대전, 독일과 소련 간의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담은 영화 ‘에너미 엣 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s)에서 소련군의 영웅 ‘바실리 그리고리예비치 자이체프’(Василий Григорьевич Зайцев)는 독일군 최고의 저격수 ‘에르빈 쾨니히’(Erwin König)를 저격하는 데 성공하며 소련군의 사기를 한껏 올렸다. 주인공 바실리 자이체프는 동명의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는데, 그는 225명의 독일군을 저격한 연합군의 전설적인 저격수로, 1991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생일 마감했다.
또한 같은 2차 세계대전 때 ‘류드밀라 파블리첸코’(Людмила Павличенко)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소련 여군이자, 붉은 군대의 저격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309명 병사를 사살하여 "죽음의 여인"이라는 별명으로 부를 정도로 최고의 저격수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있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여성 저격수이기도 하다. 그녀는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키예프 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하면서 역사학자로 활동했다.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소련 해군의 연구 조교로 근무했다. 그밖에 소련 퇴역 군인 위원회로 근무했으며 1974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크라이나의 저격수가 러시아의 장군을 사살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 3일 러시아 제41연합군 부사령관 ‘안드레이 수코베츠키’(Андре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Суховецкий) 소장이 우크라이나 저격수에게 사살되었다. 그는 공수부대원 출신으로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강제합병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을 받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전사한 최고위 관계자라는 점에서 모스크바 수뇌부에도 큰 충격일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군이 저격수로 골머리를 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39년 발발한 소련과 핀란드의 ‘겨울전쟁’에서도 핀란드 방위군 ‘시모 해위해’(Simo Häyhä)에 의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경험이 있다. 시모 해위해는 100일 남짓한 참전기간 동안 ‘모신나강’의 핀란드 생산품인 M28 소총을 이용해 542명을 저격했다. 핀란드의 설원에서 눈처럼 흰 전투복을 입고 나타나는 그가 ‘하얀 죽음’으로 불릴 정도로 러시아군은 압도적인 군사력에도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현대전에서도 저격수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의 실제 인물인 미 해군 ‘네이비 실’(Navy SEALs)의 저격수 ‘크리스 카일’(Christopher Scott "Chris" Kyle)은 이라크전에서 미군 역사상 최다 저격 기록을 세웠는데, 비공식 기록을 포함하면 400여명을 저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라크 반군들은 크리스 카일에게 악마를 뜻하는 ‘알 샤이탄’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현상금을 걸기 까지 했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저격수들은 높은 저격 성공 횟수로 유명해졌지만, 저격의 기능은 단순히 살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저격의 핵심 목적 중 하나는 고가치 표적을 노려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인데, 저격수에 표적이 돼 동료들이 차례대로 쓰러질 때마다 병사들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하물며 지휘관이 쓰러진다면 공포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러시아 장군 안드레이 수코베츠키가 저격될 당시 부대원들에게 연설 중이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연설 도중 지휘관이 저격되어 쓰러지는 모습을 본 부대원들은 거의 패닉에 빠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동토의 땅에서 한때는 동지였던 이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채 말이다. 여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을 띄면서 우크라이나군의 대응이 게릴라전의 양상을 보이며 저격수들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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